가을 삿포로 여행을 가지 않는 이유 삿포로의 가을을 뒤덮는 눈벌레, ‘설충’

설충

눈이 올 날을 알리는 설충(雪虫) – 홋카이도의 겨울 전령사

가을의 끝자락, 홋카이도의 하늘을 하얗게 수놓는 작은 벌레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 벌레를 보면 “이제 곧 첫눈이 오겠구나” 하고 말한다. 바로 설충(雪虫)이라 불리는 존재다. 일본어로는 ‘유키무시’라 부른다.

학문적인 이름은 따로 있지만, 눈처럼 하얀 털을 뒤집어쓴 그 모습 때문에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정겹게 ‘눈벌레’라고 불러왔다. 그럼 이 설충의 정체는 무엇이며, 정말로 눈이 내리기 전에 등장하는 걸까?

설충의 정체는 진딧물의 한 종류

‘설충’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벌레는 진딧물의 일종으로, 성충이 되면 몸 전체가 하얀 밀랍 성분의 솜털로 덮인다. 햇빛 아래에서 그 솜털이 바람에 흩날리는 모습은 마치 눈송이가 떠다니는 것처럼 보여, 자연스럽게 설충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홋카이도에서는 특히 가을 하늘에서 이 설충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는 다른 지역보다 서늘한 기온과 광활한 숲 덕분이다. 차가운 공기와 건조한 날씨는 설충이 날기에 이상적인 환경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숲을 넘나드는 계절 이동

설출은 매우 흥미로운 생태를 지닌 곤충이다. 봄에는 갈잎나무에서 태어나며, 여름이 되면 전나무로 이동해 그 수액을 빨아 먹는다. 이 시기에 여러 세대를 거듭해 번식하고, 가을이 깊어질 무렵에는 다시 갈잎나무로 돌아가기 위해 날개를 단 성충이 된다.

우리가 흔히 가을에 공중에서 설충을 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 ‘귀환의 계절’ 때문이다. 전나무에서 갈잎나무로 향하는 긴 여정 중, 바람에 실려 하늘을 떠다니는 모습이 눈처럼 보여 사람들에게 계절의 변화를 알린다.

약하지만 끈질긴 생명력

설충은 겉모습만큼이나 섬세하고 약한 곤충이다. 날카로운 송곳니나 독을 지니지 않아 쉽게 다른 곤충에게 잡아 먹히지만, 그 대신 놀라운 번식력을 가지고 있다.

그 비결은 바로 ‘간모(幹母)’라 불리는 암컷이다. 일본어 발음은 ‘미키하하’이다. 아무튼 이 암컷은 짝짓기 없이 자신과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클론 유충’을 낳는다. 한 마리가 약 150마리의 새끼를 생산하고, 그 새끼들 역시 같은 방식으로 번식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즉, 한 마리는 약하지만 전체 집단은 끊임없이 이어지며 생존하는 방식이다. 자연의 순환 속에서 약함과 끈질김이 공존하는, 매우 상징적인 존재라 할 수 있다.

겨울을 알리는 자연의 신호

홋카이도에서는 오래전부터 “설충이 날면 첫눈이 머지 않았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이는 단순한 민속이 아니라 실제 자연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설충이 하늘을 날기 시작하는 시기는 보통 10월 하순에서 11월 초, 마침 홋카이도에서 첫눈이 내리는 시기와 일치한다. 그래서 설충은 단순한 곤충이 아니라,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겨울의 전령사’로 여겨진다. 삿포로 시민들에게는 이 작은 벌레가 “곧 겨울이 시작된다”는 자연의 신호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삿포로 가을 여행을 안가는 이유

하지만 낭만적인 의미와 달리, 실제로 설충이 많은 시기의 홋카이도는 여행객에게는 다소 불편한 계절이기도 하다. 가을철 삿포로 거리에서는 설충이 공중에 가득 떠다니기 때문에 걷기만 해도 얼굴이나 옷에 달라붙는 일이 잦다.

특히 머리카락, 마스크, 카메라 렌즈 등에 붙는 경우가 많아 사진 촬영이 어려울 정도다. 이 때문에 삿포로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설충이 날면 외출을 자제한다’는 농담 같은 말도 있다.

그래서 가을에 홋카이도를 찾는 여행자라면, 설충이 날기 시작하는 10월 하순 이후는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첫눈 전후의 시기에는 외출 시 선글라스나 마스크를 착용해 얼굴을 보호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여름, 겨울이 워낙 인기인 지역이라 상대적으로 가을은 저렴한 가격에 예약 할 수 있어 이 시기 삿포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적당한 단풍 구경도 할 수 있고 말이다.

자연과 공존하는 겨울의 시작

설충은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겨울을 알리는 아름다운 존재이기도 하다. 짧은 생애 동안 계절의 변화를 몸소 보여주는 설충은 홋카이도의 생태계와 계절감 속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생명이다. 그래서 삿포로의 하늘에 하얀 설충이 날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는 곧 내릴 첫눈과 함께 다가올 긴 겨울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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