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구치 여행 3일차
하기코마치에서 이틀밤을 보내고 나가토 유모토 온천으로 이동하는 날. 어제 어두워서 못 본 숙소 뒤에 있는 묘진 연못. 밤에는 몰랐는데 밝을 때 와서 보니 수족관을 방불캐 할 정도로 다양한 어종이 헤엄치고 있다. 이 곳은 아주 오래전 카사야마 산과 본토 사이에 사주가 되어 육지로 되었을 때 매몰되어 생긴 연못이라고 한다. 연못은 용암 덩어리 틈새를 통해서 바깥 바다와 맞닿아 있고 바다 간만에 따라 연못의 물도 증감한다.
정말 물반 고기반이다. 가오리도 있고 돌돔, 농어 등 횟감으로 많이 쓰이는 생선들이 가득하다. 바다와 연결된 틈사이로 죄다 들어와 못나가고 있는 듯 하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의 인기척만 나도 먹을 걸 주진 않을까 싶어 고기들이 몰려 든다.
가네코 미스즈 기념관
하기에서 나가토 유모토 온천까지 가는 길에는 나가토에서 유명한 곳도 몇 곳 들렀다. 처음으로 간 곳은 가네코 미스즈 기념관이다. 가네코 미스즈(金子みすゞ)는 일본 동요시인으로 512편의 시를 남기고 26세에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유는 역시 자살. 주색잡기에 빠져 있는 남편과 이혼한 후 아이의 양육문제로 다투다 반항의 의미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짠한 금자씨의 짧은 인생은 가네코 미스즈 기념관에서 전부 볼 수 있다.
1층을 제외하면 대부분 사진 금지라 찍은 사진이 거의 없다. 나가토 곳곳에서 그녀를 기리기 위해 동상이 세워져 있고 모자이크 벽화가 있으니 이 것만 봐도 사실 충분하다. 일본 사람들에겐 대단한 존재일지 모르겠지만 한국사람에겐 그냥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정도.
총 10개의 모자이크 벽화가 있다고 하는데 전부 굳이 일부러 찾아 다닐 필요는 없고 보이면 그냥 ‘여기에도 있네’ 하면 된다.
센자키친 미치노에키
자차여행이다보니 가장 만만하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이 미치노에키다. 나가토에도 센자치킨이라는 곳이 있는데 현지인들은 일부러 찾아 올 정도 유명하다. 이 곳에서는 바다에서 잡은 신선한 어패류와 현지에서 생산된 재료로 만든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다.
여느 휴게소와 비슷한 느낌이지만 이 곳에선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는 바베큐 존도 있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장난감 박물관, 근처 섬을 배를 타고 관람할 수 있는 작은 선착장도 있다.
나가토시역에서 선로에 세워진 빨간 도리이를 볼 수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도리이 사이로 열차가 지나가면 정말 장관이겠지만 이게뭐야 싶을 정도. 나가토에는 정말 볼게 없구나 느끼는 순간이었다.
적당히 힘을 빼고 다닌 야마구치 여행 3일차 마지막 목적지 나가토 유모토 온천. 2020년 봄에 리뉴얼 되어 깨끗해지고 걷기 좋은 곳으로 변했다. 온천 마을 가운데를 지나는 오토즈레가와강 양쪽으로 료칸이 늘어서 있다. 메인이라 할 수 있는 중간에는 대욕장과 빈집을 개조해서 만든 카페가 눈길을 끈다.
생각보다 크지 않은 온천마을이라 넉넉히 30분이면 전부 볼 수 있다. 숙소에서 시간을 보낼 게 아니라면 계속 이 근처를 거닐 게 된다. 편의점도 없고 카페, 술집도 한 두개 있다. 그래서 그런지 관광호텔이 많고 그 안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설을 다양하게 갖춰 뒀다.
저녁을 먹고 소화도 시킬 겸 산책 한 바퀴. 라이트업을 해서 적당히 예쁘다. 그런데 이 시간에 장사하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소비를 해주고 싶지만 방법이 없었다. 온천마을에 갈 땐 편의점에서 주전부리와 맥주는 필수적으로 사서가야 하는 것 같다. 야마구치 여행 3일차 적당히 힘을 빼고 3일간 쌓인 여독을 조금 풀 수 있었던 날.